상담을 마치고 마무리를 하던 중에 데스크에서 00님이 다급하게 전화를 원한다는 메모를 전달받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평소에 상담 이외에는 연락을 잘 안 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큰일이 났나 싶어 전화를 걸었는데, 내용은 다름 아닌 2년 동안 유지하고 있었던 식행동 패턴이 무너지고 1주일간 폭식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절식과 간헐적 과식이 반복되더니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는데, 00님이 계속 주장하는 건 47 kg을 꼭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식사량을 더 늘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제가 이 체중을 유지하려고 어떻게 노력해왔는데, 절대 안 돼요. 절대 세끼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없어요'
47이라는 숫자는 00님이 붙잡고 있는 인생 전부인 것을 알기 때문에 더는 강하게 말하지 못하고 거의 아이를 달래듯 대화를 마무리하며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숫자에 집착하는 것, 내가 정한 체중계의 숫자 이상으로 올라가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며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식이장애 증상 중 공통적으로 나오는 부분입니다.
이런 부분이 압도적으로 강할 때는 마음 안에 온통 '체중을 다시 감량해야 한다', '무조건 적게 먹어야 한다', '내가 다시 살이 찌면 다른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고 받아주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들이 지배해서 현실에서 내가 해야 하고 에너지를 써야 할 부분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잘 다독여서 00님이 현실에서 해야 할 부분에 잘 집중하실 수 있도록, 어느 한 부분에 치우쳐져 극단적인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아닌 삶의 균형을 이뤄 나가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치료자인 제 역할이기도 한데요.
결국에는 00님 스스로 이런 기능을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상담의 최종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럼 어떻게 그런 것들이 가능할까요?
사람의 마음은 여러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어떨 때는 이런 부분이 나를 지배했다가 또 어떨 때는 다른 부분이 나를 지배하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내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도 '내가 도대체 왜 그러지?' 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다들 해보셨을 겁니다.
체중계의 숫자에 집착하는 것. 몸짱이 되어야만 내가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들은 내 안에 존재하는 식이장애 부분들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작은 것에 기뻐할 줄 알고, 현실에서 현재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부분, 그리고 나의 단점까지도 포용하며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받아주고 안아주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 부분이 바로 내 안에 존재하는 강한 내적인 힘. 참된 나! 또 다른 말로는 성인자아 입니다. 성인자아는가려져 있을 뿐 우리 각자에게 모두 존재하는 파트입니다.
00님 역시 성인자아 파트가 강할 때는 현실에서 느끼는 일상의 기쁨들을 저에게 얘기해주며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식이장애가 주는 부분들에 내 생각이 압도될 때에는 내 안의 성인자아의 힘을 떠올려 보며 극단적인 불안을 다독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 마음을 부분으로 보고 내적인 대화들을 관찰한다는 것 자체가 극단적인 생각에 나 자신이 끌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결국에는 내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찾아 눈을 감고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성인자아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그리고 그 성인자아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일상에서 계속 내적인 대화를 시도해보세요.
예) 내적 대화
'살찌면 누구도 날 좋아하지 않을 거야' (식이장애 파트)
'살찌면 건강에 좋지 않고 외적으로도 약간 미워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너 자체가 달라지는 건 없어. 지금의 남자친구와 친구들이 전적으로 너의 외적인 것만 보고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 (건강한 성인자아 파트)
'그렇긴 하지만 마른 사람들을 보면 자꾸 비교가 되고 남자친구 역시 나를 싫어하게 될 것 같아' (식이장애 파트)
'물론 비교가 될 수 있겠지만 변하는 것에서 너의 가치를 찾으려 하다 보면 넌 너 자신이 원하는 체중이 되어도 만족하기 힘들 거야. 전에 살을 많이 뺏을 때도 너는 만족하지 않았었잖아' (건강한 성인자아의 파트)
'그랬지' (식이장애 파트)
'힘들겠지만 내가 현실에서 해야 할 부분에 더 집중하면서 거기서 내 가치를 높여보자. 운동도 조금씩 더 하면서 말이야' (건강한 성인자아 파트)
처음에는 식이장애와 건강한 성인자아의 생각을 구별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고 일상에서 계속 연습을 하신다면 충분히 나의 건강한 성인자아에 대한 힘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꼭 기억해주세요! 건강한 성인자아가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어야 한쪽으로 치우친 극단적인 다이어트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칼럼제공: 마음과 마음 식이장애 클리닉 박지현 상담심리사
http://www.eatingdisor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