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해보고 싶은데, 헬스는 평범하고
요가를 해보고 싶은데 왠지 나 혼자만 남자일것 같고 그래서 고민하다가
집앞에 있는 체육관에서 1년 정도 복싱을 배운적이 있다.
처음에는 혼자 배우다가 룸메이트를 꼬셔서 3개월차 쯤에 같이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놈이 또 친구를 꼬시고 또 그친구가 친구를 꼬시고 해서 4명이 한 체육관에 등록해서 권투를 배웠다.
방년 29세, 어떤 친구들은 이미 애기도 낳고 위엄있고 근엄한 아버지가 되었을 나이지만
우리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체육관에 다니면서 저런 유치한 내기들을 많이 했다.
운동을 하면서 내기를 하다보면 뿜어져 나오는 주체못할 아드레날린과 도파민 때문에
간혹 지나친 승부욕으로 판단력이 흐려져 점점 유치하고 치열한 경쟁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들 모두가 그런 유치함을 매우 좋아했다.
남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린애라는 말은 셋 이상 모였는 남자들을 보면 누구라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운동을 하는 내내 점점 유치해지고 치열해져갔다.
체육관앞에는 오락실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는 그때 오락실 앞에 펀칭머신에 한창 빠져있었다.
운동이 끝나면 매일 같이 펀칭 머신을 가지고 내기를 했다. 처음엔 평범한 자판기 커피를 쏘기로 시작된 내기는
날이 가면 갈수록 포카리스웨트 사기, 피자빵을 넘어서 닭한마리에 맥주등 규모가 점점 커져갔다.
한달쯤 지나서 내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즘엔 우리는 하루 1인 1닭이 생활화 되었다.
그렇게 규모가 커질수록 그들의 승부욕은 더욱더 불이 붙어 이제는 한번 내기를 하면 진사람은 최소 2만원정도씩은 독박을 써야하는 상황에 이르럿다.
슬슬 이쯤되니 서로 눈치를 살피기시작했지만 이 재미있는 내기를 멈출수는 없었다. 그때 내 룸메이트가 기가막힌 내기를 하나 제안했는데 그것은 바로, 요즘은 미취학 하동들도 유치해서 안한다는 딱밤 맞기 였다.
"처음에는 그까짓 딱밤 야식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내기를 했는데
다이나믹하고 묵직한 룸메이트의 딱밤을 한방 맞아보니 안일했던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분명히 딱밤 맞기라고했는데 숟가락으로 후려친건 아닌지 주변에 숨겨둔 숟가락은 없나 찾아보아야만 했다.
도저히 딱밤을 맞았은거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두개골을 울리는 묵진한 진동에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기도 전에
이마를 쪼개는듯한 경험해 본적 없는 고통이 뒤따랏고 두개골이 갈라지거나 쪼개진건 아닌지 아닌지 황급히 확인해봐야 했다.
다행히도 이마는 멀쩔했다.
그렇게 폭풍 같은 딱밤의 충격과 고통이 한차례 지나가고 다니,
마음속에서 그를 향한 분노와 증오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번째 판에서도 내기에 지고 , 룸메이트의 숟가락으로 후려친듯한 같은 딱밤을 한방 더 먹었다.
고통스럽다 못해 소름끼치는 딱밤 장인의 한방이었는데 딱밤을 맞기 직전 눈을 감을 때 따듯하고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이 잠시 떠올랐던것 같다.
어쨋든 세번째 판은 내가 이겼는데 그게 화근 이었다. 이미 분노와 증오로인해 이성을 잃어버릴 대로 잃은 나는, 이번 딱밤 한방으로 녀석의 머리통을 반드시 쪼개 놓겠다는 집념만이 가득했다.
쉼호흡을 크게 했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녀석의 이마를 박살내자 라는 마음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머릿 속에 쿵푸보이 친미가 통배권으로 물이 가득찬 항아리를 박살내는 그림을 그렸다
장대높이 뛰기 선수의 휘어지는 장대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최대한으로 손가락을 뒤로 재껴서 놈의 이마를 박살냈다.
이마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구는 룸메이트의 모습을 보니 통쾌한 마음에 들어 깔깔깔 웃으며
혹시 너무 큰 충격에 쌍코피가 터진건 아니냐며 놀려대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을 중심으로 손바닥 전체의 감각이 이상했다.
놀란 마음에 다음날 바로 병원을 가보니. 인대가 조금 다친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고, 어쩌다가 다쳣냐는 질문에
친구랑 딱밤맞기하다가 다쳤다는 말이 차마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고
그냥 복싱을 좀 하다가...라고 얼버무렸다
처방으로 소염제를 주셨다.
그렇게 치열했던 우리들의 내기는 상처만 남은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