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동안 그저 겉보기에 뚱뚱한 사람을 가리켜 너무 쉽게 ‘비만’이라고 단정 지었던 건 아닐까? 비만 전문 오상우 교수와 인터뷰를 마치고 든 생각이다.
키 157cm, 81kg의 20대 후반 여성 조 아무개씨.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로 6개월 만에 9kg이 늘어난 그녀는 다이어트 약품을 구입했다. 처음 2개월간은 순조롭게 살이 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정체기를 거쳐 요요 현상이 찾아왔다.
6개월이 지난 현재, 약품을 구입한 카드 할부 금액은 여전히 남아 있건만 몸무게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국내 비만 연구 1세대로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 중인 오상우 교수(동국대학교 일산병원 비만대사영양센터 소장)는 이렇게 말했다.
“비만 치료는 생활 습관 교정 없이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장기간 복용하면 심장 판막에 문제가 생기는 식욕억제제도 있고요. 비만 치료에 쓰이는 새로 나온 식욕억제제도 검증이 필요합니다. 또 감량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어야 비로소 ‘비만을 치료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비만’ ‘다이어트’는 여성이라면 무관심할 수 없는 단어지만 올바른 정의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뚱뚱하면 비만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오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겉으로 보기에 살이 많이 쪘다고 해서 비만은 아닙니다. 몸무게가 늘어나면서 당뇨, 고혈압 등의 질병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졌거나 이미 겪고 있는 사람을 ‘비만’이라고 정의합니다. 단순히 몸무게 하나로만 판정하지 않아요. 허리둘레, 지방의 비율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보죠. 또 겉으로 보기에는 몸무게가 적어 보여도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병 등 합병증이 있는 사람도 ‘비만 환자’로 분류됩니다.”
‘대한민국의 비만 문제가 뭐가 심각해? 오히려 다들 지나치게 살을 빼서 문제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 교수는 잘못된 다이어트 방법 때문에 오히려 비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20~30대의 비만 인구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공단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일반 건강검진 빅 데이터 1억 건을 활용해 고도비만 및 초고도비만에 대해 분석한 결과, 활동력이 왕성한 20~30대 젊은 층에서 초고도비만이 12년간 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 여성들이 감내해야 할 것은 타인의 시선만이 아니다.
“비만 여성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생리불순으로 인한 불임’입니다. 또 폐경 이후에는 배가 나오고 심혈관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관절도 약해지고요. 남성보다 근육량이 적어서 그렇죠. 이 상태에서 몸무게가 늘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성들은 20~30대에만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비만 관리를 하고 나이 들면 아예 신경을 안 써요. 심지어 젊은 층의 비만 관리조차도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고요.”
비만이 정말 위험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대사증후군이다. ‘대사증후군’은 복부 비만, 혈당 상승, HDL 콜레스테롤 저하, 중성지방 상승, 혈압 상승 중 3개 이상이 기준치를 초과한 경우다. 당뇨병, 심혈관질환, 뇌졸중, 암 등의 심각한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대사증후군이 있는 경우 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이 두 배 이상 높으며 당뇨병이 발생할 확률은 10배 이상 증가합니다. 놀랍게도 국내 30세 이상 성인 4명 중 1명 정도가 대사증후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성별과 직업군별로 살펴보면 여성은 전업주부에서, 남성은 사무직에서 대사증후군의 위험이 높습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비만 인구가 늘어났을까? 오 교수는 그 첫 번째 이유로 1980년대 후반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피자, 햄버거 등 서구식 음식 문화를 꼽았다. 기름진 음식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기성세대와 서구식 음식에 길들여진 20~30대 청년 세대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비빔밥에 참기름을 넣으면 혼났어요. 반면 요즘은 참기름을 듬뿍 뿌려 만드는 음식이 많죠. 조리법도 볶거나 튀기는 것이 많아졌고요. 기름진 음식에 노출되지 않았던 50대 이상 연령층의 지방세포와 젊은 세대의 지방세포는 기능이 다릅니다. 젊은 세대는 지방세포를 몸에 저장하는 단백질이나 유전자의 발현이 더 원활합니다. 더 살이 찌기 쉽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올바른 비만 치료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오 교수는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식습관, 운동, 흡연, 음주, 스트레스의 5가지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흡연에 대한 잘못된 속설을 지적했다.
“살 뺀다고 담배 피우는 분들 많으시죠? 그런데 흡연하면 몸무게는 줄어들지 몰라도 내장 지방은 더 축적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어요. 결국 비만으로 가는 길이죠. 비만은 단순히 체중을 감량하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적 요소, 생활 습관,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근본적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영양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비만에 관한 지식이 밝혀진 지는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단순히 기름만 저장하는 줄 알았던 지방세포가 뇌로부터 신호를 받아 식욕을 조절하는 기능을 지녔다는 것을 발견한 것 역시 1990년대 후반이다.
그럼에도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진실인 것처럼 돌기도 한다. 비만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려고 애써온 오상우 교수. 그러나 ‘이거 다 아는 이야기잖아’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진짜 아는 것은 다르거든요. 가령 ‘유산소 운동을 하면 되잖아요’라고 해서 ‘유산소 운동이 뭐냐’고 물어보면 답을 못하세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안다고 해서 물어보면 특정 음식만 거론하는 분도 많고요. 꼭 헬스클럽에서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구릿빛 근육에 집착하는 분도 많습니다. 모 연예인의 ‘지방 0%’라는 말을 듣고 무조건 지방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고요.”
오 교수는 “숨이 가쁠 정도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빨리 걷거나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걷기 등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단 30분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운동은 즐겁게 해야 오래 지속할 수 있고, 오래 지속하면 살은 빠지게 되어 있다는 것.
근육이 빠져 기초대사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근력 운동은 이틀에 한 번, 가벼운 스트레칭은 매일 할 것을 권했다. 그렇다면 식습관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음식을 가리거나 한 가지만 먹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마세요. 중요한 건 식재료가 아니라 조리 방법입니다. 고기를 상추에 싸 먹는 사람과 기름장을 듬뿍 찍어 먹는 사람이 같은 칼로리를 섭취한다고 볼 수 없죠. 고구마를 튀겨 먹는 사람과 삶아 먹는 사람도 그렇고요. 흰밥보다 잡곡밥이 좋다는 건 다들 알 것입니다. 위가 절반 혹은 3분의 2 정도 차면 숟가락을 내려놓도록 해보세요. 20분간 천천히 위가 뇌한테 신호를 보낼 때까지 기다리면서 드세요. 그렇게 일주일 하면 위가 줄어듭니다. 저절로 양을 조절할 수 있게 되지요. 줄어든 위를 유지하면 절반은 성공한 겁니다.”
식습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물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좋을까? 식사 시간엔 마시면 안 되는 걸까?
“우리 몸의 근육에 단백질을 저장하려면 물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식사 시간에 물을 마시면 소화 효소가 희석되니 마셔서는 안 된다고 하죠? 그건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1.5L 들이 페트병 2개 이상 물을 마셔야 희석이 가능하죠. 우리 몸은 물이 필요하면 신호를 주니까 그냥 목마르면 드세요. 하루에 얼마 이상 마시라는 것도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요.”
식습관과 운동은 개인의 의지로 실천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직장 내 스트레스나 회식 등의 문화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오 교수 또한 비만 예방을 위한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인을 위한 비만 예방 문화도 필요하지만 특히 청소년 비만 문제는 사회적으로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청소년 때 비만 판정을 받을 경우 성장한 후 초고도비만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비만이 가속화되면 성인이 되면 심각한 초고도비만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20~30대 초고도비만 인구 중 상당수가 어렸을 때부터 비만 판정을 받은 사람이었어요. 미국의 경우 청소년이 학교에서 얼마든지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도록 뷔페가 마련되어 있죠.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는 비만을 예방하기 위한 캠페인으로 ‘Let’s move’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톱 가수 비욘세가 누구나 쉽게 따라 출 수 있는 안무로 직접 춘 뮤직비디오도 미국 내 청소년들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요. 한국도 그런 사례를 눈여겨보고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보험료가 낮을수록 초고도비만율이 높다. 왜 그럴까? 저소득층은 채소나 과일 같은 건강에 좋은 식품보다는 저렴한 패스트푸드에 접근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의 관리를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어린이들은 바른 식습관을 익히기 어렵다. 결국 초고도비만의 가능성에 더 쉽게 노출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 초고도비만 인구가 몇 명인지 아세요? 최소 7만 명입니다. 왜 그들의 이야기가 안 들릴까요? 초고도비만자는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알릴 의지조차 없기 때문이에요. 안전하고 좋은 치료법을 알려주기 위해 비만학회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지원자가 적었어요. 이유를 알아보니 ‘어차피 나는 살을 뺄 수 없을 거야’라는 좌절감이 가장 큰 원인이었어요. 그중에는 ‘살 빼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초고도비만자들을 모았다가 일부만 선택하고 다시 돌려보내는 일부 방송 프로그램에 속은 사람도 있었고요.”
우여곡절 끝에 추려진 초고도비만자들의 사연을 접한 오 교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비만 때문에 사회에서 좌절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가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사연을 보내온 초고도비만자의 상당수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오교수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성심껏 치료를 도와드렸어요. 필요한 경우 ‘위절제’ 등의 수술도 진행했고요. 치료를 통해 비만에서 벗어난 한 남성이 벤처 기업 사장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참 뿌듯했습니다. 초고도비만 인구의 심각성을 최대한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만 인구와 관련한 빅 데이터를 분석하고 도표를 만들어 언론에 알리니 조금씩 관심이 커지더군요.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멉니다.”
저소득층의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 교수는 의료보험 혜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고도비만이 사회적 문제임을 국민이 함께 인식할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회 문화적인 합의와 도움이 필요해요. 예를 들면 요즘 애들은 아이돌에 관심이 많잖아요. 아이돌 무대의 댄서들이 ‘춤 교실’을 연다면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기꺼이 참여하지 않을까요? 저소득층 아이들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싶은 생각도 간절해요.”
잠을 줄여가며 비만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캠페인과 강의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오상우 교수.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의사로 남고 싶은지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가능한 한 많은 분들을 돕고 싶어요. 그래서 비만 문제를 사회적인 움직임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온 것이고요.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저로 인해 많은 분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