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에게 살에 대해 얘기했던 게 상처가 됐다. 밖에서는 듣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가족한테만 살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어릴 때부터 약간 통통했던 나는 9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닐 수 없었다. 엄마가 원하는 체중이 될 때까지 9층까지 걸어 다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몇 년간을 그렇게 했다.
20살이 된 나에게 엄마는 지금도 어릴 때는 바비 인형 같아서 마음대로 옷을 입힐 수 있어 좋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해 속상하다고 하신다. 내가 아무리 다른 것들을 잘해도 엄마는 늘 ‘살만 빼면 딱 좋은데…’ 라는 말을 입 버릇처럼 하신다. 그래서 나는 늘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
‘먹으면 안 돼!’ ‘하루 3끼 밥 먹는 게 짐같이 느껴진다’. ‘음식 생각 좀 안 하고 싶다’. ‘적게 먹어야 한다’ 늘 이런 생각들로 지긋지긋하다. 가족끼리 여행을 가도 나는 바나나만 먹고 돌아다녔다. 하루에 500kcal만 먹으면서, 죽어라 운동을 해서 살을 뺐다. 하지만 막상 살을 뺐는데도 학교에 가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 더 우울해졌다.
그 전에는 나의 모든 불행의 원인을, 모든 우울함의 원인을, 살찐 것 때문에 생긴 거로 생각했다. 근데 그 우울함이 실체를 알고 나니 더 우울함이 심해진 것 같다』
살을 빼서 날씬해지고 싶다는 것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모두의 공통적인 바램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그리고 이왕이면 더 예쁜 몸으로 더 날씬한 몸을 갖는 게 나 스스로에게도 만족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시되는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 자체가 나 자신의 만족감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살을 꼭 빼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불안감에 시달려 건강한 다이어트를 오히려 방해하기 쉽습니다.
안타깝게도 '날씬해야지만 넌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잘못된 생각은 가족에게서 주입당한 경우가 꽤 많습니다.'엄마, 내가 꼭 살 빼야 해?' 라고 대놓고 따지는 아이들은 그래도 힘이 있는 아이들이라 괜찮습니다.
그러나 내성적이고 힘이 없는 아이들은 그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혼자 결론을 내립니다.
'엄마는 살 찐 사람을 싫어해. 저번에 엄마가 사준 옷이 더 이상 안 맞는 다는 것을 엄마가 알면, 분명 실망할거야. 얼른 다이어트 해야지.’
앞에 사례는 픽션으로 꾸며 본 것이지만 임상경험에서도 늘 다이어트를 강요했던 부모님으로 인해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말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이미 굳게 내면화된 부모님의 가치관은 뿌리가 깊게 박혀 '내가 날씬해야지 사랑받을 수 있어. 그래야 나는 다른 것들도 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설령 부모가 다이어트를 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부모가 무얼 원하는지는 대강은 압니다. 다이어트로 체중이 빠졌을 때 엄마가 친척들에게 자랑스럽게 나를 소개하는 것, 예쁜 옷을 많이 사주시는 것, 저녁을 먹지 않고 참는 나에게 아빠가 의지가 대단하다며 칭찬해주시는 것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아~ 내가 살이 찌면 우리 엄마 아빠가 날 싫어한다'는 생각을 더 굳어지게 만듭니다. 부모님이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칭찬해주니 좋기는 한데 씁쓸한 이 느낌은 뭘까. 그때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을지라도 이런 것들이 계속 쌓이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다이어트에 대해 강요 아닌 강요를 하게 되는 부모들의 유형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좋은 외모만이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부모들입니다
대체로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부모가 많습니다.
부모가 과거에 외모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거나 거부당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것이 결국 자신감을 잃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 때문에 젊은 나날을 우울하게 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부모님들은 드러내놓고 철저한 외모관리를 강요하게 됩니다.
먹어야 하거나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을 정해져 있으며 음식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나 양도 정해져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어긴다면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2. 완벽주의가 너무 강해 ‘자기관리’의 한 측면으로써 외모관리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가치를 부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식사의 종류와 양을 제한하고 매일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준비하는 사람의 당연한 자세라고 여깁니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면 ‘자기관리도 못 하는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평가 받기 쉽습니다.
3.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음식만을 먹고 좋은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종의 웰빙바람이 낳은 결과인데 살이 찐다는 것은 단순히 건강의 적신호라고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자녀가 건강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는 지구 상에 정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나 체형이 다르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한 것인데 아이들은 이를 절대적이라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4. 나르시시즘이 강한 부모님일 경우 그럴 수 있습니다
남에게 보여질 때 예쁘고 날씬하고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것에 대해 자신의 자랑거리로 남들에게 보여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놓고 강요를 했든 아니든 간에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은 다이어트에 자연스럽게 매진하게 됩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부모와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만드는 일인지 체감하게 되고 자신도 스스로가 만족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날씬해야지만 내가 사랑받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혹시 강하게 드십니까? 그렇다면 그 생각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칼럼제공: 마음과마음 식이장애클리닉 박지현 상담심리사
http://www.eatingdisor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