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배고픔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속게 될 때가 있다.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리거나 해야 할 일이 왕창 쌓였거나 또는 여유 시간이 많아 지루할 때 등등.
사람마다 다르지만, 특히 나는 갑자기 생기는 시간에 약한 편이다.
미리 예정된 스케줄이 취소되거나 바쁠 것이라 예상했는데, 한가한 날이면 어김없이 음식을 찾곤 했다.
냉동실에 오래 묵혀둔 떡도 꺼내 먹고, 계속 부엌과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무언가를 갈망했다. 제대로 밥을 안 차려 먹어서 그런가 하며, 밥을 차려 먹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배가 아무리 그득해도 시간이 생기면, 어떤 것이든 더 먹으며 그 시간을 채우려 했다.
고치고 싶은 습관이었기에,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해보다가 전문가에게 물어보긴 했지만, 정작 솔루션 앞에서는 ‘내가 정말’ 이 습관을 고치고 싶은지 머뭇거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붕 뜬 시간을 알차고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타임 킬링용 컨텐츠를 보며, 주전부리를 먹는 시간이 사실은 반가웠다.
‘하면, 안되는데’ 하는 것들은 어째서 늘, 재미있는 것인지, 같은 패턴을 보이는 스스로가 막막했다.
그 순간에는 몰랐지만, 우리가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은 많은 경우, 우리 앞에 놓인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압박감, 스트레스, 지루함, 화남, 짜증, 슬픔,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우리는 배고프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음식을 입에 넣게 된다.
내가 조금씩 지루한 시간을 음식으로 채우지 않게 된 것은 명상을 하며 배운, ‘다정한 호기심’의 개념 덕분이었다.
나는 내가 어떤 순간에 약해지는 지를 관찰했다. 이때, 습관적으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기 위해, 그날의 상황과 감정을 기록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습관에 관한 연구들에 따르면, 습관을 만드는 신호 대부분은 아래 다섯 가지 중 하나에 속한다고 한다.
-습관발동시간, 습관 발동장소, 습관 발동 직전에 들었던 기분이나 생각, 습관 발동 직전에 같이 있던 사람, 습관 발동 직전에 한 행동
일탈의 순간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숨겨진 감정을 알아차리고, 여기에 다정한 호기심을 더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경계하고 있던 습관이 발동했을 때, 이 기준들을 참고하여 기록을 남겨두는 것은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단순히 살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을 먹는 것으로 감정을 해소하는 것은 자신을 다치게 하기 쉽기 때문에 줄여나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필요성은 남이 아니라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다.
다이어트 코칭을 한 회원 중 한 분은 어린아이를 육아 중인 전업주부셨다.
그분은 출산을 하며, 체중은 자연스럽게 내려왔는데, 생활패턴이 엉망이 되며,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게 된다는 고민을 갖고 계셨다.
낮에는 식사를 거르고, 아이가 잠들고 난 후, 늦은 밤에 맥주와 과자를 먹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매일 술을 먹는 것이 안 좋다고는 인지하고 있지만, 외출도 어렵고, 제대로 된 숙면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먹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이 그녀 역시 이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정한 호기심으로 스스로를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배가 고팠는가? 0
먹은 시간: 수요일 밤 11시 30분
먹기 전의 기분: 아이가 안 자서 스트레스 받음
먹은 음식: 맥주 500ML 두캔, 불닭볶음면
먹으면서 한 행동: 넷플릭스 보기
먹은 후의 기분: 오늘도 먹어버렸다는 후회
한 주 동안 그녀는 먹은 시간, 먹기 전과 후의 기분,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를 기록했다.
그리고, 많은 양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녁에는 과자나 배달음식 등 자신의 노력이 필요없는 음식을 찾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먹기 전에는 주로, 짜증이나 고생한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가 강하게 들었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먹었지만 먹고 나서 기분이 긍정적으로 전환된 날은 하루 뿐인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매일 똑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자신의 기록을 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정한 호기심으로 들여다보았다.
물론 한 주의 관찰로 모든 것이 변하는 마법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함께 앞으로 육아 퇴근 후, 긍정적인 기분이 필요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나와 함께 다양한 방법을 찾아나가기로 했다.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기분이 필요하다면, 가족구성원과 저녁 식사 당번을 정하거나 밀프렙을 시도해볼 수 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성취감이나 지루한 하루의 마무리에 자극이 필요하다면 매일 저녁 운동하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 도움된다.
마음의 빈틈을 음식으로 채우려 하면 점점 더 커진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내가 고치고 싶은 습관을 관찰하고, 그 속에 숨겨진 열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체중을 줄이기 위해 습관을 고치는 게 아니라 습관을 고치면 불필요한 살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사실은 습관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번에 완벽히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내려놓고, 천천히, 조금씩 감정을 음식으로 다루지 않는 연습을 하자.
※칼럼제공: 최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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