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꼭 1번씩은 폭식과 구토가 있긴 해요.
너무 많이 먹었다 싶으면 살이 찔 것 같아서 토하기도 하고, 또 계획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을 때 그게 그렇게 저는 화가 나요.
원하지 않았는데 치킨을 먹고 나서 속도 더부룩하고 너무 화가 나서 결국 토하고 잘 수 있었어요.
주로 음식이나 내 몸에 대한 짜증을 많이 느끼고, 인간관계나 주변 상황에 대한 감정은 잘 느끼지 못해요.”
폭식, 구토는 분명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생긴 증상입니다.
하지만, 그 주기가 워낙 번개처럼 흘러가기 때문에 ‘내가 왜 지금 폭식을 하지? 구토하려고 하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매일 나 자신에게 ‘내일은 진짜 폭식하지 말고 구토하지 말자!’ 다짐을 해보기 시작합니다.
어금니 꽉 깨물고 의지를 다져보지만, 그것 역시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 대게는 ‘내 의지가 약한가?’ 하며 자기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입니다.
왜 쉽지 않고 이토록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될까요?
폭식, 구토라는 증상 자체가 단순히 먹는 것에 의한 조절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의 관점으로 보면 감당하기 힘든 기억들로 인한 감정들과 생각들이 뇌에서 건강하게 처리되지 않았을 때는 반드시 다 끝나지 않은 채로 우리를 괴롭힙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느꼈던 ‘버려짐’이라는 감정이 있었다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 고통을 피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이미 끝난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관계에서 그 감정이 건드려질 때, 빛의 속도로 폭식이나 구토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폭식 구토는 하나의 생존 수단인 셈입니다.
맹수가 달려들어 동물을 죽이려 할 때 동물들이 도망가거나 싸우거나 얼어붙는 것을 방어기제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폭식이나 구토는 고통스러운 기억과 감정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방어 전략으로 사용된 것이지요.
마치 자기 자신을 벌주고 학대하듯 구토를 하며 싸우게 되고, 폭식으로 도망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도, 알아차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폭식이나 구토는 의지나 노력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또는 단순히 대체 행동을 한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습니다.
폭식, 구토로 연결되는 그사이에 잠깐의 멈춤이 필요합니다.
일단은 적절한 식사를 했는지 체크해보세요.
그리고 식사를 잘 마쳤는데도 구토나 폭식 증상이 보이면, 증상이 끝난 뒤에 내가 어떤 반복적인 패턴이나 감정에서 무너지는지 숙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알아차림 훈련이 있어야만 나의 모든 감정을 음식에 투사하며 에너지를 쓰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폭식 구토 그사이에 내가 피하고 싶고 건드려지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정과 생각이 존재할 것입니다.
※ 칼럼제공: 마음과 마음 식이장애클리닉, 박지현 상담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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