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폼 좀 잡고 글을 써본다.
내가 대학교가려고 자기소개서를 옆에 끼고 살았을 때 이후로는 온점을 붙여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20여일 넘게, 오늘도 어김없이 넘어진 나를 위해 큰 맘 먹고 온점까지 붙여가면서 일기쓴다. ㅋㅋㅋㅋㅋ
사실 요즘은, 요가학원에서 거울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
사방이 거울인 그 곳은 내 몸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젊은 여자들은 다들 왜 그렇게 날씬할까!
요가강사님도 내가 평소에 바라고 바라는 몸매의 소유자라서, 요가학원에 갈 때마다 내 자존감은 바닥을 치닫는다.
그 뿐만 아니라 예전보다 (그래봤자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몸이 미친 듯이 무거워져서 간혹 동작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가뜩이나 부은 얼굴과 불룩한 배, 땡땡해진 종아리로 인해 우울해진 상태에서 동작까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그 날은 진짜 완전 블루데이다...
그리고 매일같이 출근하는 매장에서도, 포스기 앞에 서면 보이는 거울에서 내 얼굴을 확인할 때면, 전보다 늘어진 턱살에 매번 자괴감이 든다.
사장님도 살이 좀 찐 것 같다며 내 우울한 하소연에 공감을 표하시고...
폭식증이 시작된 후, 9kg를 얻었다.
요가복을 입은 내 몸을 보는 것이 한 때의 낙이었는데, 지금은 꼴도 보기 싫다.
쇼윈도에 비친 내 다리를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는데, 지금은 한숨만 내쉬게한다.
거울도 보고 싶지 않다. 내 눈으로 내 몸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리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지 않다.
다들 내가 살을 한창 뺐을 때 봤던지라, 지금의 나를 본다면, 말은 안하더라도 '살 쪘네'라고 생각할 것이 뻔하다.
내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더라도 살 찐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친구들은 다들 내가 만나는 것을 피하니까 서운해하기만 한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나를 만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친구들까지 즐겁게 만날 자신이 없다.
매일같이 '살 빼야겠다'라고 생각한다.
폭식증을 고치려면 다이어트는 내려 놓아야 한다던데 나는 그게 쉽지 않다.
폭식증을 고치려는 것도 다이어트를 하고 싶기 때문에 고치려는 것이다.
더 예뻤던 나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그 만큼 운동량도 늘어나야하는데, 몸이 무거워져서는 스쿼트 50개도 헉헉댄다. 그러다보면 의욕이 사라져서 다른 근력운동은 시도하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살은 빼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니, 아직 정신을 덜 차린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근육미 넘치는 몸매가 되려면 근력운동은 필수인데... 알면서도 그런다. ㅠㅠ
20여일간 폭식에 시달리다보니, 식사시간이 두려울 때도 있다.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폭주하는 기관차마냥 내달리니까,
나를 조절하지 못할 것이 눈에 보이니까, 식사하는 것이 두렵다.
처음에는 집에서만 폭식을 해서 밖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그런데 이제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평등한 폭식을 한다. ㅋㅋㅋㅋㅋ 이럴 때만 존나 평등하다.
하지만 계속된 폭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끊임없이 불어나는 살도 아니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피하는 것도 아니고,
근력운동에 소홀해지는 것도 아니고,
폭식을 가장한 식사시간을 두려워 하는 것도 아닌,
내가 폭식에 익숙해지고 합리화에 능숙해진다는 것이다.
매 시간 나를 괴롭히는 폭식욕구에, '반드시 참는다!'라는 생각은 단 몇분도 지속되지 못한다.
그저 계속 떠오르는 욕구에, '나는 또 왜 이럴까?'라는 생각으로 굴복하고 좌절한다.
게다가 폭식 후에 죄책감과 후회감을 갖지 않겠다는 다짐이 핑계와 자기합리화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둔갑한다.
'괜찮아'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가 변질되어가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체에 내가 너무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들 나를 응원하고 걱정해주는데, 정작 나는 폭식증과 맞서 싸우려기보다는, 함께 공존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살은 빼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이중 인격이다.)
그 외에도 요즘 내 머릿속은 이러한 비슷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내 머리가 고장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폭식증과 다이어트'에만 치중되어있다.)
그러다가 불과 몇 분 전, 이 어플 다이어리를 보았다.
한창 다이어트에 열을 내고 있을 12월, 나는 67kg였다.
홍콩 여행을 다녀온 11월 말에는 70kg. 66kg로 출발해서 4일만에 4kg를 찌웠고, 다시 다이어트에 몰두하여 12월 1일에는 67kg였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66kg이다.
20여일만에 9kg가 쪘으나 12월보다는 괜찮은 수치다. (물론 눈바디상으로는 지금이 훨씬 엉망진창일 것이다!)
그래서 홍콩 여행 사진을 뒤지기 시작했다.
많이 통통했구나. 물론 지금도 이렇겠지.
다리 살 개쩐다. 이렇게 통통한 무다리로 사진을 찍다니.
저렇게 행복하게... 웃으면서.
눈물이 핑 돌더라.
저 때의 나는 그래도 살이 많이 빠졌다면서 사진 찍는 것을 즐거워했다. 사진 속 나는 너무 밝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진 찍는 것조차 꺼려하고있다.
셀카가 취미이자 생활이었는데, 내 사진첩에는 온통 식단사진과 폭식증 관련 칼럼 캡쳐사진뿐이다.
내 앨범 가득 메웠던, 운동하면서 찍은 하늘 사진이나 한껏 꾸미고 찍은 셀카나 귀여운 우리 고양이 사진따위는,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여 20일 전으로 가야 볼 수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대체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추가로, 12월과 1월 다이어리를 보니까, 내가 왜 폭식증을 겪었는 지, 한 눈에 보이더라.
나는 내가 잘 먹고 잘 움직이는 다이어트의 정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데도 생리가 멈추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했다.
산부인과에서는 다이어트를 중단하라며 잔소리를 했고, 나는 그 때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폭식증에 빠진 지금까지도, 건강한 다이어트를 하던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 잘 몰랐다.
그저 스트레스뿐인건가,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 2달동안 약 800kcal를 섭취하며 800kcal를 소모하는 미친 짓을 하고 있었다.
지금 보면 또라이가 아닐 수 없다.
12월 1일 67kg였던 몸이 1월 27일에 57kg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런 미친 행동 덕분이었다.
나는 내가 스스로 폭식증을 부르고 있었구나.
67kg의 행복했던 나를 스스로 버리고.
나는 여전히 뭘 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저 내일도 폭식하지 않기 위해 3끼를 든든하게 먹을 생각이고, 간식도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예정이다.
여전히 내일도 폭식할 위험에 노출되어있겠지.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폭식증을 겪게 된 이유를 알았고,
확실히 '체중'이나 '몸매'와 내가 느끼는 '행복지수'와는 상관성이 없다는 것.
지금은 비록 66kg에 미친 폭식으로 불어난 배를 부여잡고 있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다시 도전하는 수 밖에.
오늘 넘어졌더라도 내일 다시 일어난다면, 그건 그냥 도중에 잠시 삐끗한, 그런 사소한, 실수니까.
무섭다. 폭식할 것 같은 위태로운 내가 무섭고, 그에 따라 가감없이 쭉쭉 늘어나는 내 몸도 무섭고,
그래도 힘을 내자.
남들이 다 응원하더라도 내가 나를 응원하지 않으면, 될 일이 있을리가 없지.
나는 아직 예쁘다. 나는 원래 살 빼기 전에도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애였다.
살 빼기 전에도 통통하고 귀여웠으며 살 빼고 나서는 더 예뻐졌다. (웃기겠지만 운동하다가 거울보고 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ㅋㅋㅋㅋㅋ)
예전의 나라면 지금도 예쁘다며, 생각했을텐데
끝없는 자기혐오는 그 말을 내뱉는 것을 힘들게 한다.
전보다 더 못생겨진 느낌이다.
그래도, 그래도, 예쁘다.
원래 모든 존재는 '예쁘다'라고 달래줘야 더 예뻐지는 법이다.
이제는 나를 예뻐해줄 남자도 없는데 나라도 예뻐해줘야지. (갑자기 외로워지네.)
나는 체중과 몸매에 상관 없이, 충분히 예쁘다.
나는 여전히 성격도 좋고 남들에게 사랑받는 존재다.
(물론 폭식증 이후로는 근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조금 난감하긴하다.)
나는 요 며칠간 쉴 틈 없이 관련 칼럼을 정독하여 레알 건강한 다이어트 방법을 알았고, 언제든지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폭식증부터 치료하고 다이어트를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불안하고 긴장되고, 내일도 폭식하게 될까봐 무섭지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오구오구 이쁘다. 잘해왔어.
조금 넘어지더라도 거기서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건 나중에서야 웃으며 생각날 사소한 실수일 뿐이야.
수백번 넘어져도 수천번 일어나면 그만이야.
오늘도 힘들었지. 고생했어. 잘했어.
우리 내일도 조금만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