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찌면 정말, 저는 살기 싫어질만큼 공포스러워요. 체중계 숫자가 올라가 있으면, 그 날은 계속 먹고 토하는 거예요.'
A씨는 중학교 3년 내내 힘든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돈 문제로 매일 싸웠고, 이혼 얘기가 늘 오가곤 했습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힘들었습니다.왕따까지는 아니었지만 늘 그룹에서 겉돌며 혼자 보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정서적으로 굉장히 취약하고 힘든 시기였지만, A씨는 그 시기에 가장 통통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제 키가 160이었는데 그때 60kg가 넘게 나갔었어요. 인생에서 가장 통통했을 때에요. 중학교 3년 내내 저는 날씬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한창 몸에 관심이 많고 예민한 시기에 A씨는 날씬하고 말랐던 친구들이 부러웠고, 스스로 늘 비교가 됐던 것입니다.
물론 체중에 대한 부분도 A씨의 자존감을 위축시키고, 힘들게 했던 기억이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재 살이 찌는 것 자체가 공포스럽고 다시 60kg이 될까봐 죽고 싶을 정도로 무섭다면, 단지 이것은 체중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보통 많은 내담자 분들은 살찌기 싫은 마음을 얘기하다, 꼭 뒤에는 자신이 제일 힘들었던 때, 가장 고통스러웠고 상처받았던 시기를 얘기하십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살찌는 것이라고 겉으로는 그렇게 의식하고 있지만, 진짜 두려워하는 부분은 바로 다시는 상처받았던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몸은 기억한다' 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 그 기억들은 내가 아무리 머리로 잊고 눌렀다고 해도, 몸의 감각은 다 그 기억을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나는 그 때 일들을 다 잊었고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라고 생각해도내 몸은 아직도 그 기억을 작게라도 자극하게 되는 경험을 마주하게 되면, 바로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공포, 불안, 우울 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경험을 회피하고, 감정을 마주하는 것을 누를수록 부정적인 감정들을 자꾸만 내 일상들을 방해하게 되는 것이지요.
바로, 체중과 음식에 집착하는 증상으로 말입니다.
A씨가 느끼는 체중에 대한 두려움은 다시 예전의 기억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강력한 방어인 것입니다.
고통스러웠던 '트라우마의 기억'이 체중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상담의 목표는 바로 이러한 식이장애 증상 이면에 있는 모든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제거하거나 변화시키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 감정들을 수용하고 기꺼이 경험하도록 만드는데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한다는 것은 그 감정들을 내가 온전히 느끼며,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A씨와 저는 이런 작업들을 수 년에 걸쳐 해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물론 다시 체중에 집착하며 먹고 토하는 증상으로 다시 도망가는 일들이 수 없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A씨는 점점 그 감정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방 안에서 귀를 틀어막으며 느꼈던 그 공포와 불안감을 치료자인 저와 함께 경험하면서 감정조절 능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조금씩 그 중학생 아이가 느꼈던 아픔들을 돌봐주었던 것입니다.
증상이 없어지자 A씨는 끝도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으로 다시 폭식, 구토를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과정들을 다 견뎌냈습니다.
증상으로 덮여있었던 A씨의 힘든 감정들은 창조적인 감정으로 다시 성장했던 것입니다.
외로움이 고독으로,
불안이 부지런함으로,
우울이 창의력으로,
분노가 자기표현 에너지로요.
현재 내가 1~2kg 느는 것에도 내 존재감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을 경험하고 계신다면, 혹시 체중 뒤에 있는 나의 고통스러운 트라우마 경험을 누르고 있지는 않으신지 한 번 점검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칼럼제공: 너는 꽃 식이장애전문상담센터, 박지현 상담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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