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 한 번도 우리 엄마에게서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 늘 불안의 연속이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늘 불같이 내게 화를 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편한 장소는 스탠드만 켠 불 꺼진 내방의 침대 한 켠이었다. 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내 감정상태가 어떤지 전혀 관심이 없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난 늘 공허감과 외로움에 허덕였던 것 같다.
미칠 듯한 공허감과 외로움이 몰려올 때에는 나도 모르게 음식을 정신 없이 먹게 됐다. 정신을 차린 뒤에는 이미 엄청난 폭식을 한 뒤였다. 그럼 또 살찌는 게 걱정돼 토하던지 아니면 그 다음날 다시 안 먹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이성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늘 불편하다. 저 사람이 날 떠날까,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늘 불안하다. 단 한 시간이라도 그 사람과 연락이 되지 않으면 나를 집어삼킬 듯한 불안감과 공포감이 몰려와 엄마가 내게 평소 그러했듯 그에게 심한 욕설과 분노를 드러낸 적도 많다.
도대체 내 구멍난 마음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더 이상 폭식을 하면서 내 자신을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다.'』
내 자신이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으면, 마음 안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게 됩니다.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껴 생기는 구멍, 내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할 수 없다고 느껴서 생기는 존재에 대한 구멍, 늘 칭찬과 격려보다는 무시와 비난, 냉대를 받아 생기는 자신감에 대한 구멍, 집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취할 수 없어서 생기는 안식처에 대한 구멍들입니다.
이렇게 엄마와의 관계가 불안정할 때 나 자신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허감과 외로움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엄마 뱃속에서부터 최초의 관계를 맺게 되는 엄마와의 애착은 두뇌발달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부터 모든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나의 전체적인 모습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엄마와의 관계가 안정적인 애착으로 이어지면, 아이는 그 힘을 기반으로 삼아 정서적 융통성, 사회적 기능, 인지능력이 향상되어 힘든 상황이나 좌절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고, 다른 사람들과도 안정된 관계를 유지할 줄 알며, 자신의 감정 역시 잘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반면, 엄마와의 불안정 애착은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분비돼 모든 상황에서 경직된 반응을 보이고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며, 사회적 관계에서도 편안한 관계를 맺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내 자신도 스스로가 불편하니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것도 힘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아이가 힘든 감정을 표현했을 때 최초 감정조절자인 엄마가 '괜찮을 거야. 아가야'라고 달래주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불안해하거나 다그쳤다면,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자기 조절(self-regulation)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됩니다.
폭식은 바로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한 하나의 응급수단으로 사용됩니다.
불안정한 애착관계를 형성했던 사람들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제일 쉽고 빠른 방법이 될 수 있는 폭식을 통해 그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알 수 없는 공허감, 외로움의 감정에 시달리고 그것을 폭식으로 해결하고 있다면, 상처받은 내 마음의 조각들, 결핍된 내 마음의 조각들을 봐달라는 몸의 신호로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러한 감정조차 구별되지 않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폭식을 하고 계시다면 그것 역시 내 힘든 마음을 알아달라는 몸의 표현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희망적인 것은 아무리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하더라도 심리적 구멍을 채워나가는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상담치료를 통해서 엄마와의 관계를 바꿔나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으며,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엄마가 아닌 내 주변에 나를 아껴줄 수 있고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들의 힘을 얻어 스스로 나의 내면에 엄마를 키워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엄마와의 관계를 좋게 하는 것도,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의 힘을 통해서 내 상처를 보듬는 것도 결국은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나를 보살 필 수 있는 '나의 내면의 엄마'를 만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나에게 힘이 되는 책의 구절이나 말들을 반복해 적어보고 그것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나의 심리적 구멍을 채워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좋은 엄마가 전하는 메시지를 매일 아침마다 해주면 어떨까요?
'네가 있어서 정말 기뻐'
'늘 널 보고 있단다'
'넌 정말 특별해'
'엄마는 너를 사랑해'
'네 욕구는 무척 중요해. 엄마한테 의지하렴. 다 도와줄게'
'엄마는 널 위해 여기 있단다. 언제든 널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어'
'엄마가 안전하게 지켜줄게'
'엄마 품에서 편히 쉬렴'
'엄마는 너와 함께 있어서 즐거워. 넌 엄마의 마음을 환하게 해준단다'
※ 칼럼제공 : 마음과마음 식이장애 클리닉 '박지현 상담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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