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병원에 가서 비만 치료 약물을 처방받아 먹었을 때, 나는 그 약이 '살 빼는 약'인 줄 알았다.
먹기만 하면 저절로 살이 빠진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이미 의대생이었고 그 약에 대해서 배우기도 했는데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에는 부작용과 실망으로 끝나 버렸지만.
병원에서 비만 치료를 돕기 위해 처방해 주는 약은 포만감을 느끼게 만들어서 식욕을 감소시키거나 섭취한 지방의 흡수를 억제시키거나 몸에서 쓰이는 에너지를 늘려서 체중을 줄여준다.
이러한 약물치료는 의학적 비만, 즉 체질량 지수 BMI가 25kg/m² 이상인 경우에만 시작하는데, 자기가 비만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는 공식이 있다.
(25 X 키(m) X 키(m)로 계산해서 나온 숫자 뒤에 킬로그램을 붙여보자.
바로 이 몸무게부터가 자기 키를 기준으로 했을 때 비만이라고 진단된다. 그런데 이 기준이 잘 지켜지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내가 건강검진을 다니면서 상담하던 중, 키 165 센티미터에 체중이 53 킬로그램인데도 비만 치료 약물을 먹고 있는 분이 있었다. BMI가 19.9로 정상체중에서도 적은 축에 속하는 데 약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약물 치료에는 부작용이라는 위험이 있다.
그런데도 비만을 약물로 치료하는 이유는 비만으로 인해 건강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양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도 정상체중인 사람이 약을 먹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닐 것 같다.
안전성의 문제도 있다. 내가 먹었던 리덕틸이라는 제품은 최고의 비만치료제로 각광받다가 심혈관 질환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져서 사용이 중단되었다. FDA 승인 후 그런 판정이 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그 이후로 나온 약물 들에 또 어떤 위험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그리고 약물 치료의 기본 원칙은 약 없이 6개월 동안 비만 치료를 유지했는데도 기존 체중의 10퍼센트도 줄지 않았을 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태어나서 평생 다이어트를 했어요! 흑'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정말로 한 가지 다이어트 방법을 6개월 이상 꾸준히 했는가? 내 경험상 그런 경우는 드물다. 보통 한달, 길어야 두세달 바짝 시도한 후 절망하고 포기했다가 다시 시도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시중에 나온 모든 약은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체중을 조절해 주지 못한다. 즉 약물 치료는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식이, 운동, 생활요법을 도와주는 역할 밖에 못한다는 뜻이다.
결국 약을 먹으면서도 똑같이 운동하고, 먹을 것을 조절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약을 먹고 있던 그 검진자에게 이런 설명을 하면서 그렇게 날씬한데도 비만 치료약을 의사가 처방해 줬느냐고 물어봤다.
'안 해주겠다고 하는 곳도 있었어요. 그래도 다른 병원 가서 받겠다고 하면 다 해주던데요?'
비만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약 처방 없이 먹는 거 조절하고 운동하라고 하면 욕먹는다는 이야기도 기억이 났다. 약물 치료 기준이 있음에도 그렇게 내가 아는 이야기만 듣고 갈 거면 내가 병원에 왜 왔겠냐고, 여기서 처방해주지 않으면 다른 데 가서 처방 받으면 된다고 항의한다고.
나름대로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며 약을 끊기를 권했지만 대답은…….
“48킬로그램 찍으면 약 끊을께요”
“헉, 165센티미터에 48킬로그램이면 절대로 건강한 체중이 아니에요!”
“그래도 일단 빼 볼게요”
내가 누차 설명해도 결국 말리지 못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비만치료약들은 '살 빼주는 약'이 아니라 '내가 살을 빼는 것을 도와주는 약'이다.
내가 살을 뺄 때 넘어야 하는 장애물을 조금씩 낮춰 주는 것이지 약을 먹으면 뿅하고 날씬해지는 게 아니다.
나도 한 때는 그런 마법의 약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나마 약을 먹는 동안에는 대충 맘대로 먹고 운동 거의 안 해도 조금은 빠졌으니까. 그렇지만 약을 끊자마자 굶어서 뺐을 때와 마찬가지로 원상복귀 되고 말았다.
돈은 돈대로 써놓고 체중은 원래대로 다 돌아오고, 약 먹다가 부작용이 생겨서 응급실 신세까지 지고, 이거 참!하지만 마음껏 먹어도 살찌지 않고 건강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 약이 나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릴 수는 없다.
매년 새로운 비만치료제가 개발 되어도 평생 그것을 먹을 것이 아니라면 결국은 생활 습관을 바꿔야 원하는 몸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약물 치료를 고려하고 있다면, 약을 먹기 전에 먼저 조금씩 생활 습관을 건강하게 바꿔 보기를 권한다. 이미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면 약물이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을 빼는 것이 라고 생각하고 조금씩 생활 습관을 바꿔가길 바란다.
결국 모든 비만 치료는 '내가 살을 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에 불과하니까.
출처: 책 <뚱뚱해도 괜찮아> 중 발췌
※ 칼럼제공: 다이어트하는 닥터, 닥터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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