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폭식으로 살이 쪘으면 음식을 안 먹으면 되는 거잖아요. 근데 계속 먹어요. 폭식하고 있는 제 모습이 너무 싫고 징그러워요. 제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너무 죄스럽기까지 해요.
그래서 이제는 정말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적게 먹으려고 노력하는데도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한 걸까요? 엄마한테 사정해서 다이어트에 좋다는 한약도 먹어보고 또 운동도 해봤지만 폭식을 하니 체중이 빠질 리가 없죠. 너무 저 자신이 한심해요.'
'감정으로 인한 폭식'을 하는 분들은 그 원인을 자기 자신의 의지부족이나 음식을 절제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 몰고 가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폭식으로 늘어난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철저한 식사 관리와 체계적인 운동을 병행하기도 하고 여러 다이어트 약과 제품들을 먹기도 하지만, 다시 반복되는 폭식은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더 부추기게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고 식탐이 많고 힘이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짓기 쉬운 것이겠죠.
폭식과 구토는 우리로 하여금 잠시나마 부정적 감정을 회피할 수 있게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 일 뿐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감정의 억압과 회피가 지속되다 보면 습관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내가 폭식한다고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감정을 참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나중에는 좋은 감정들이 느껴져도 위험신호로 여겨 기분 좋아도 폭식,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심심해서 하게 되는 폭식들이 늘어나게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부분은 자기 감정과 욕구를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들고 나중에는 폭식을 조절하지 못하는 나에 대해서도 수치심을 갖도록 한다는 데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감정으로 인한 폭식'을 멈추기 위해서는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감정 조절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능력은 그럼 대체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걸까요?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내면 상태가 어떠한지 스스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내가 현재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른다면, 그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힘도 생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되면 자신에 대한 실망감, 괴로움, 분노, 우울감 등 여러 힘든 감정들과 마주해야 하므로, 처음에는 힘이 들 수 있지만 조금씩 나의 내면과 접촉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폭식으로 힘든 감정들을 풀어내고 위로 받지 않아도 스스로 그 감정들을 조절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감정 조절 능력은 바로 이런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생겨날 수 있습니다.
내면의 대화로 들어가는 처음 1단계는 먼저 지금 이 순간 내 감정이 어떤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라는 물음에 감정의 이름을 붙이고 그 감정을 표현해 보는 것입니다.
◆ 함께 해 볼까요? ◆
폭식과 상관없이 내가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주된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예) 분노, 우울, 외로움, 수치심, 공허함, 무가치함 등등
그런 나의 감정이 어떤 신체감각에서 느껴지시나요?
감정과 신체감각을 찾았다면 두 가지를 연결해서,
'나는 --- 한 감정을 신체 어느 부분에서 느껴' 라고 표현해보세요.
'나는 ---를 느낀다'고 표현하는 것은 내 감정이 타인이나 외부의 상황에 의해서 끌려가는 것이 아닌 내가 감정의 주체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고 싫은 감정들을 만드는 장본인이 타인이나 환경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 1. 외롭다
2. 가슴 한가운데에서 구멍이 뻥 뚫린 느낌이 들어요
3. 나는 가슴 한 가운데에서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외로운 감정을 느껴요
나의 주된 감정이 무엇인지 찾으셨다면, 이제 그 감정이 몇 살 때부터 생겨났는지 자세히 살펴보셔야 합니다.
끊임없는 나와의 내면 대화를 통해서 나의 감정이 언제부터 그렇게 뿌리가 깊었는지 알아주고 찾아가 주는 것이죠. 마치 엄마가 아이를 보듬어 주듯이요.
그런 다음에는 나의 내면의 어린아이가 필요한 것들을 성인인 내가 해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결핍된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을 충분히 들어주고 해주는 것이죠.
감정 조절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 제일 어릴 때 엄마의 수용과 공감을 통해서 생기는 것이기에 성인이 되어 혼자서 한다는 것이 당연히 힘든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식을 갖고 꾸준히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달래주기 시작한다면 차츰차츰 나아지는 나 자신을 보게 되실 겁니다.
※ 칼럼제공: 마음과 마음 식이장애 클리닉 박지현 상담심리사
http://www.eatingdisor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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