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 하나하나를 셀 수 있을 것 같은 몸매로 떡하니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보니 제목이 무려 '체지방 0퍼센트의 완벽한 복근'이란다. 마치 수능 만점처럼 체지방 0퍼센트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들 그것을 부러워한다.
우리 사회가 비만을 공공의 적처럼 여기다 보니 어느새 몸 속 지방, FAT, 기름 덩어리라면 하나도 안 남기고 몰아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지방은 우리 몸에서 없어도 되는 걸까?
다들 예상하고 있겠지만 지방은 우리 몸에 꼭 있어야 하는 성분이다. 만일 우리 몸에 지방이 정말 필요로 없었다면 주요 영양소는 탄수화물과 단백질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인체의 3대 영양소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다.
나는 병원에서 실습을 돌 때 '체지방 0퍼센트'라는 표현을 처음 봤다. '체지방이 0퍼센트라고? 한 대 맞았다간 골로 가겠네?'
그렇다. 폭신폭신한 지방은 간이나 콩팥 같은 중요한 기관들을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말로 지방이 없다면 우리는 전봇대에 슬쩍 부딪쳐도 곧장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지방은 주요 장기를 보호하는 것 말고도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단 지방은 지방질과 지방세포로 구분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방 덩어리는 지방세포들이 모인 지방 조직이고, 지방질은 여기저기 재료로 쓰이는 지방조각들이다.
지방질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게 해주며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도 한다. 또한 세포막을 만들어서 각 세포가 기능을 잘 유지하게 하고, 주요 호르몬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 몸 속의 신경들이 신호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신경을 싹 감싸주는 역할도 한다. 마치 전선을 피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지방세포는 어떨까? 이건 말 그대로 지방을 저장하는 세포인데, 몸에 남는 에너지가 많으면 지방을 꾸역꾸역 집어넣어서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살찐 사람들은 보통 지방세포의 수와 크기가 증가한 상태이다. 아, 옛날에는 나이가 들어서 찐 살은 지방세포의 크기만 증가하고, 그 수는 어렸을 때만 늘어난다고 여겼다.한마디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다음에 살이 찌면 지방세포의 수는 그대로고 크기만 커진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요즘에는 나이 들어서도 지방세포의 수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슬슬 나오고 있다. 안타깝다!
이런 지방 세포들은 피부 아래쪽에 차곡차곡 모여서 피하지방을 이루고, 몸 안쪽 장기 사이사이에서 내장지방을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앗! 이 녀석들이 문제구나! 특히 내장지방이 나쁘다고 그랬어!'하고 지방세포를 미워하지는 말자.
이렇게 모인 지방세포들은 위급 상황에 대비해서 에너지를 저장해주기도 하고 몸을 따뜻하게 보온하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기도 한다.
만약 내장 기관을 둘러 싸서 쿠션처럼 작용하는 지방이 없다면? 아무리 근육과 뼈대들이 딴딴하게 보호해줘도 한 대만 잘못 맞으면 정말 큰일난다!
이렇게 중요하고 도움이 되는 지방 녀석들이 어쩌다가 짐 덩어리로 취급을 받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제일 큰 이유는 세상이 바뀐 탓이리라. 먹을 것도 부족하고 끼니를 제때 챙겨먹기 힘들었던 과거에는 인간이 살아남으려면 섭취한 영양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저장해야만 했다.
그렇게 미리 모아 둔 지방을 써가면서 빙하기도 넘기고, 보릿고개도 뚫고 지나갔는데 이제는 같은 양을 먹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지방으로 쟁여 둘 수 있는, 그러니까 뚱뚱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분들이 바로 우리 조상님 되신다는 말씀.
그런데 이제 영양분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살면서도 우리 몸은 수천년간 생존을 위해 택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 유전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지방을 쌓아 두려고 착착착 돌아가는데, 이미 창고들이 다 찼고 지방은 넘쳐서 썩어가는 상황이다. 그런 지방들 때문에 혈압이니 당이니 콜레스테롤이니 하는 온갖 병을 앓는 것이다.
이렇게 비만에 관련된 질병이 증가하다간 수백 년 후에는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효율적으로 지방을 축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몸에서 지방을 다 몰아낸다고 해서 절대 건강해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사실, 체지방 0퍼센트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소리다.
체지방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마 근육의 비율이 굉장히 높아서 기계로 측정했을 때 그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먹을 것을 엄청나게 절제하고 노력했겠지만 의학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볼 수는 없다.
가장 이상적인 체지방률은 남자 8~15 퍼센트, 여자 15~22 퍼센트 사이로 유지하는 것이다. 체지방 0 퍼센트? 꿈꾸지도 말자!?
출처: 책 <뚱뚱해도 괜찮아> 중 발췌
※ 칼럼제공: 다이어트 하는 닥터, 닥터유현
http://blog.naver.com/1t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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