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 여고를 다니기도 했고, '나는 어차피 뚱뚱하니까' 라는 생각에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의 여자를 버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자는 약하고, 의존적이고, 내숭 떨고, 질투하고, 뒷얘기 많이 하잖아. 됐어.'아무래도 나는 여자다움이라는 특성을 내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더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솝 우화에서, 담 너머에 있는 포도를 먹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손에 안 닿으니까 '에이, 저 포도는 신포도야. 그만두자!' 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어느 정도로 여자와 멀어졌냐면, 고등학교 다닐 때 아빠가 바리캉으로 머리를 잘라 주셨을 정도다. 빡빡 밀지는 않고 짧은 커트 머리 정도로 깎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아빠한테 잘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미용실에 가늘 걸 싫어하기도 했고, 가운을 덮으면 목이 너무 콱 조였고, 수건으로 목을 감으려고 해도 끝이 묶이지 않아서 고무줄로 겨우 겨우 묶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가운을 입은 채로 거울을 보면 터질 것 같은 얼굴이 둥그렇게 보여서 별로였다.
내가 나를 여자로 안 보고 뚱뚱하기까지 했으니까 남들도 자연스럽게, 여자보다는 오히려 남자에 가까운 인간으로 보게 되었다. 그렇게 외모도 행동도 생각도 내가 생각하는 여자와는 가능한 멀어지려고 했다.
그렇게 남자처럼 대학 생활을 하니, 나름대로 장점도 있었다. 술을 열심히 퍼먹기도 하고, 이것저것 나서서 힘도 쓰고 일을 벌이기도 했다.
언니들이나 여자 친구들이 여성성이 부족한 나를 많이 챙겨주는 것도 좋았다. 견제의 대상보다는 곰돌이처럼 귀여움을 받았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뚱뚱하다'는 이야기에 별 반응을 하지 않게 되었다.
여자가 뚱뚱한 거랑 남자가 뚱뚱한 거랑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 나를 설명하려면 '05학번에 뚱뚱한 여자애'라고 하면 되는 것에도 무덤덤해졌다.
한 번은 친한 동기가 술 마시고 진지하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남자애들은 진짜로 너 뚱뚱한 거 가지고 욕해. 그러니까 살 좀 빼자' 그래도 웃고 넘겼다.
'여자의 적은 여자야! 누나들이 주는 거 다 받아먹지 말라고!' 이런 말을 들었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나름대로 마음 독하게 먹고 다이어트한 다음에 금방 다시 살이 찐 거였으니까.
'살 빼려고 해 봤자 안 된다고!'하면서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에이, 안 빼도 잘 지내고 있어. 괜찮아!'라고 말하는 게 더 쉬웠다.
출처: 책 <뚱뚱해도 괜찮아> 중 발췌
※칼럼제공: 다이어트하는 닥터, 닥터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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